[시 당선] 데스크에서
데스크에서 시간이 흐른다 7번채와 드라이버가 궤도를 그리며 골프공을 퍽퍽 때리기 시작하면.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다음 손님을 기다리는 몸도 마음도 건조한 새벽 6시의 어린 직원. 5번 타석의 단골 손님은 대학교 교수님. 교수님의 단골 메뉴는 맹탕 아메리카노. 그는 대뜸 이천원 대신 말을 내밀었다. 너는 글을 쓴다 했지? 사회를 아주 잘 알아야해 신문을 읽어 종이신문으로 말야 청년의 시각으로 사회를 관찰하고…또…그걸로 작품을 만들어야 해 그러면 이제 된거야 버석한 손으로 커피를 제조하다말고 뒤돌아 광대 올리며 네 감사합니다 맹물커피, 꼬질한 골프장갑, 라이터를 든 채 교수손님은 사라졌다.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나는 이번엔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오후 2시의 배고픈 직원. 나의 생크림 케이크에 장촛대 네개가 꼽힐 날 나는 매끈하고 잘빠진 드라이버가 되어 있을까, 볼 수거통을 전전하여 때묻은 골프공이 되어 있을까 저 아저씨 아줌마들은 본인을 뭐라고 생각할까 아니꼬와 하면서도 인스타그램 대신 뉴스를 클릭하는 나. 삼개월 후에 골프장이 무너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채를 휘두를 중장년의 얼굴들. 주머니에서 못쓸 공 하나가 나왔다. 버린다는 걸 깜빡했지 뭐야 나는 공과 함께 집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주머니 속에서 공의 파편이 손가락을 따끔 찌른다. 차혜빈 (영화영상) 저의 시를 다시 읽어보니 참 부끄럽습니다. ‘데스크에서’는 실제로 일했던 골프장에서의 경험을 비롯한 작품입니다. 마음속으로 불평의 소용돌이가 반나절에 열 번씩은 거세게 일었던 그 일자리에서 저는 저 스스로를 불쌍히 여겼나 봅니다. ‘골프공’이나 ‘매끈한 채’나 사람은 하나의 무언가로 정의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 많은 부자들이 비열한 성품을 가지고 있던 모습과 아니꼽게 보던 저 역시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한편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 골프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는 여러 번 휩쓸리고 또 어떤 소용돌이는 스스로 일으키기도 했을 테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은 그보다 더 단단하게 버텨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 가작] 나를 만드는 것
나를 만드는 것 철문은 시련이다. 높은 담벼락은 고통이다. 철문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높은 담벼락도 그러하다. 나는 철문을 통과할 수 없기에 높은 담벼락을 넘을수 없기에 강해진다. 철문의 차가움은 나를 따뜻하게 높은 담벼락의 딱딱함은 나를 부드럽게 그렇게 나는 성장한다. 오늘도 나는, 철문과 높은 담벼락에 몸을 기댄다. 김종찬 (글로벌경영)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니체가 그의 저서 < 우상의 황혼>에 담은 글입니다. 2년 전, 군대에서 니체의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밖에 보이는 담벼락, 철문은 저를 고통받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니체의 말을 접한 뒤 그러한 고통들이 결국 저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상명대 학우분들이 많이 힘드시겠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 입선] 너를 사랑할 때도
너를 사랑할 때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진 않았다 언제 오냐고 왜 이제 왔냐고 묻지 않았다 너를 사랑할 때도 그랬다 이재승 (국어교육) 나에게 시 쓰는 일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낚아채어 울림을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너를 사랑할 때도」도 역시 우리가 사랑할 때 보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가 오기를 애써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 이 세상에 비가 내리면 아이처럼 좋아할 뿐입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옛 애인을 떠올리며, 그와 같은 사랑을 했다고 노래합니다. 언제 오냐고 묻지도,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따지지도 않는 그런 사랑을 말이죠. 시인을 꿈꾸며 10년 가까이 시를 써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시 심사평]
최미숙 교수 (국어교육과) 올해 응모작들의 시 창작 경향은 분명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가 많았다. 사랑, 우정, 아르바이트, 가족 등은 우리 청춘이 항상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다. 그런데 올해 특징적인 것은 코로나19가 가져온 우리 삶의 변화, 비대면 생활의 정서 등을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강타하는 코로나19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시 곳곳에 표현되어 있었다. 당선작으로는 <데스크에서>를 선정했다. 이 시에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청춘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몸도 마음도 건조한” 시적 화자 ‘나’는 힘든 가운데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 시대 청춘이자, 동시에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청춘의 모습이다. 감동 없는 조언을 건네는 기성세대 ‘교수님’의 목소리를 삽입한 것은 시의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꼬와 하면서도 인스타그램 대신 뉴스를 클릭하는 나”가 과연 몇 십년 후 맞이하게 될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삼개월 후에 골프장이 무너지고 아파트가 들어섰어도 여전히 시적 화자 ‘나’의 주머니에는 골프공이 함께 하고 있다. 공의 파편이 손가락을 따끔 찌르면서. 시적 여운이 길게 남는 표현이다. 가작 <나를 만드는 것>에서 우리는 힘든 세상을 강인하게 견인하면서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에게 ‘철문’과 ‘높은 담벼락’은 ‘시련’이고 ‘고통’이다. “철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 “높은 담벼락을 넘을수 없”다는 것은 시련과 고통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련과 고통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밑거름으로 삼아 강하게 성장한다. 자칫 뻔한 내용을 담은 시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을 반전시킨 것은 이 시 특유의 역설적 표현일 것이다. 입선 <너를 사랑할 때도>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하고 있다. 화자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아주 짧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진 않았다”, “묻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목소리 사이에 숨어 있는 간극은 아무래도 독자가 채워야 할 것 같다. 생략 어법이 전하는 긴 여운이 독자로 하여금 사랑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고 있다.
[평론 당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는 세상, 그의 영화
평론 당선.pdf 한원재 (국어교육) 모든 영화는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평론에서 강하게 비판한 작품들은 훌륭한 영화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대한 글을 썼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영화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관객의 마음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시간을 버티는 힘이 있는 영화가 명작인 것입니다. 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이 그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이유에 관해 제 자신도 궁금했기에 글을 썼습니다. 나름대로 저의 궁금증은 해소되었지만 정말 부족한 것이 많은 글입니다. 그래도 제가 쓴 이 글이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 꿈을 위한 응원과 격려의 차원에서 뽑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평론 가작] 역사를 대면해야 한다는 고요한 단언
평론 가작.pdf 김종욱 (글로벌경영) 졸업 전에, 다시 한번 더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2년 전, 글쓰기 수업 시간에 lgbt에 관한 평론을 마지막으로 쓰고 싶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전 지식이 부족하여 글을 쓰다 끝내 포기했었습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졸업 전에 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좋게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보시면 좋겠습니다.
[평론 입선]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 -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평론 입선.pdf 김민 (경영학) 안녕하세요. 경영학부 김민입니다. 먼저 제 글이 많이 부족함에도 입선을 하게 되어 놀랐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정말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다양한 것들을 한 주제로 묶을 수 있는 주제가 ‘소외’였습니다. 개개인으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없어지는 세상을 꿈꾸며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런 세상이 오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러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 따뜻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평론 심사평]
정의진 교수 (프랑스어권지역학전공) 올해 학술상 평론 부문에는 총 12편의 응모작이 투고되었다. 그 12편의 제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 평론 <블랙머니>’, ‘문화평론 <울트라맨 A>와 반(反)권선징악’, ‘괴물의 탄생, 그리고 자본-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읽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는 세상, 그의 영화’, ‘캐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히메> 영화-코로나 19 시대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중점으로’,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설명하는 외면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이제니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의미를 넘어서 리듬과 소리로’, ‘천재성과 그 대가에 관하여’, ‘조금 더 개운한 아침을 위해’,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역사를 대면해야 한다는 고요한 단언’ 이상 12편이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론이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시와 소설에 대한 평론도 각각 두 편이었으며, 주제와 문제의식 또한 다양하였다. 전체적으로는 현재의 한국 사회, 그리고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전개한 평론이 많았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나 환경위기에 대한 평론들이 그러하며, 특히 페미니즘 및 성 소수자 인권 문제를 다룬 평론이 여러 편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개개인의 감수성과 가치관 및 삶의 태도, 서로 다른 자질과 특성 및 삶의 내력을 가진 개개인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제기되는 인간관계의 문제, 이러한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사회적 윤리 기준 등에 대한 문제도 여러 편의 응모작이 직간접적으로 다룬 문제들이다. 한편 분석의 강조점에 있어서도 작품의 주제 의식에 집중한 경우와, 이를 풀어나가는 작품의 형식 및 방법론에 집중한 경우가 고루 있었다. 투고된 평론들이 모두 나름의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심화시킨 수준 또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서 최종 수상작 3편을 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최종 당선작을 가려내야만 하는 심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심사는 악역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일정한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 기준의 핵심은 평론의 기본에 얼마나 충실한가이다. 평론은 학술적인 논문과 자유로운 에세이 사이에서, 필자의 주체적인 입장과 그 입장을 객관화하는 논리적 일관성이 모두 직접적으로 외면화되는 글쓰기이다. 또한 그 입장과 논리가 철저하게 평론 대상인 작품에 직접적으로 근거해야만 하는 글쓰기이다. 따라서 평론을 위하여 동원한 개념이나 이론을 작품분석에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경우나, 역으로 필자의 주체적인 입장을 타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 뒷받침하는 노력이 부족한 경우가 일반적으로 평론적 글쓰기에서 피해야 할 주의사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한 개념이나 이론 자체에 정확성과 명료성을 기하는 일도 평론에 필수적이며, 평론가의 주체적인 감수성과 입장을 불필요한 수사적 문장을 남발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맞춤법, 띄어쓰기, 비문 등의 문제는 말할 나위 없이 모든 글쓰기에서 최종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12편의 응모작을 재검토한 결과, 당선작으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는 세상, 그의 영화>, 가작으로는 <역사를 대면해야 한다는 고요한 단언>,입선작으로는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가 각각 선정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는 세상, 그의 영화>는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일본인들의 삶의 이면에 내재하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과장 없이 찬찬히 직시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세계를 잘 포착한 평론이다. <역사를 대면해야 한다는 고요한 단언>은 구 소비에트 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독립한 조지아 공화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사회문화적인 의미를,<소외된 자들에 대해서-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는 총기 난사 살인이라는 끔찍한 반인륜적 범죄 사건을 통해서 성찰할 수 있는 사회적 소외와 인간관계의 문제를 잘 해명한 평론이다. 수상자들에게는 축하를, 아쉽게도 이번에는 수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지만 귀중한 글을 응모한 학생들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만화 당선] 나의 안경
강미리 (디지털만화영상) 허접하고 짧은 만화라 당선될 줄 몰랐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않아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순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만화 가작] 피터팬을 위하여
이유민 (디지털만화영상) <피터팬을 위하여>는 자라지 못한, 미성숙한 어른에 관한 이야기로, 상처받은 시절에 머물러 몸과 마음이 같이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건네고자 구상하게 된 작품입니다. 끝맺지 못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비록 서툰 만화이지만 아주 작은 위로라도 얻어 가신다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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