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가작]The formula derived using the sine function for the variation in solar declination based on date, and its validat
[논문 가작]The formula derived using the sine function for the variation in solar declination based on date, and its validation 신재우(화공신소재전공) 안녕하세요. 화공신소재전공 2학년 신재우입니다. 제 50회 상명 학술상 ‘가작'으로 당선되어 영광입니다. 이번 논문의 내용은 태양의 적위를 간단한 수식으로 나타내고, 식을 검증하는 내용을 작성했습니다. 제 생각과 노력이 담긴 연구 결과가 학술상에 당선되어 뿌듯합니다. 이번 연구를 토대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여 더 성장하는 상명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논문 당선] 활성탄을 이용한 BPA 흡착 연구
[논문 당선] 활성탄을 이용한 BPA 흡착 연구 박경란(화공신소재전공) 평소에 관심있던 분야의 연구를 하던 중 마침 학보사에서 진행하는 상명 학술상을 보고, 지원하여 당선하게 되었습니다. 당선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49회 상명학술상 수상자
제49회 상명학술상 수상자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만화 당선] 금이 간 도자기
금이 간 도자기 원주(디지털콘텐츠학과) 어딘가에 처음 보내본 작품인데, 당선되서 기분이 기쁘기도 하고 뭔가 오묘하네요. 스토리 작성해준 언니에게 가장 고맙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싶어요. 큰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부문 심사평
사진 부문 심사평 임준형 교수 (사진영상미디어전공) 안녕하세요. 2022년도 상명학술상 “사진”부문의 심사를 맡게 된 사진영상미디어전공 임준형 교수입니다. 올해는 모든 학생이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마침내 캠퍼스 라이프를 시작한 뜻깊은 한해인 것 같습니다. 학기말을 잘 마무리하고 즐거운 겨울방학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학생이 출품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스케치부터 반려동물 그리고 학우들과 캠퍼스를 촬영한 사진도 많았으며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디지털사진을 활용한 다양한 사진 작업과 함께 작품의 수준이 높아진 점입니다. 사진부문의 심사인 만큼 사진적인 완성도와 창의력 그리고 구성 능력을 우선으로 평가하였으며 프린트의 수준도 고려하여 당선작을 선정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선작은 참가자 27 학생의 “ fearless”입니다. 참가자 27 학생은 여러 장의 디지털 작업을 한 사진 작품을 출품하였습니다. 각각의 사진이 독특한 주제를 표현하고 있었는데 “ fearless” 작품의 경우 배경 이미지와 거울 안에 비친 이미지의 조화가 매우 잘 어울렸고 조명 또한 훌륭하게 처리하였습니다. 그리고 톤 조절과 주제표현력도 가장 좋았습니다. 배경은 무거운 로우키로 분위기를 연출한 후 거울 안의 이미지를 몽환적이면서도 몰입력 있는 사진으로 구성하여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잘 활용한 작품입니다. 가작은 참가자 17 학생의 “꿈의 잔상”입니다. 예전 필름을 사용하던 전통적인 카메라와 암실 기법에서 많이 촬영되었던 방식인데 “꿈의 잔상”작품의 경우 이 방식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뛰어난 구성력으로 사진을 완성하였습니다. 왼쪽의 숲은 오른쪽 사람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듯한 주제가 돋보였고 두 사진의 합성 비율과 프레이밍을 적절히 잘 이용하였습니다. 입선은 참가자 19 학생의 “낙막”입니다. 당선작과 가작의 경우 후작업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낙막”작품의 경우 사진 촬영만으로 표현된 스트레이트 사진이라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평면이지만 유리의 반영을 이용한 공간감을 잘 표현하였고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의 포즈가 특이하게 잘 표현되었습니다. 올해의 출품작을 봤을 때 내년에는 더욱 다채롭고 우수한 사진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선정된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심사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당선] fearless
fearless 전형우 (사진영상콘텐츠학과) 처음 참가하는 학술상에서 수상하게 되어 기분이 새롭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현실 세계, 그리고 거울 세계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눈으로 바라보는, 즐거운 경험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진 가작] 꿈의 잔상
꿈의 잔상 백서진(사진영상미디어전공) 우리가 꿈을 꿀 때만큼은 자연스럽고 선명했던 장면들이 눈을 뜨고 꿈을 회상할 때면 마치 복잡한 잔상처럼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꿈의 잔상’을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상명대학교 입학 후 첫 과제전 준비를 하면서 촬영했던 사진으로 상명 학술상에서 수상하게 되어 매우 영광이고, 앞으로 저에게 더욱 의미있는 사진이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작품을 선정해주신 학술상 심사위원분들과 추운 날씨에도 촬영에 응해주신 아버지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사진 입선] 낙막
낙막 남희주 (사진영상미디어전공)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부문 심사평
소설 부문 심사평 심사위원 강옥희 교수 (국어교육과)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등 SF적 상상력을 자극하던 소재들이 등장했던 예년에 비해 올해 학술상 소설 부분에 응모한 대부분은 개인적인 삶의 내밀한 편린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글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글을 쓰는 일은 개인의 내밀한 욕망과 그것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예년과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다. 올해 학술상 소설 부분에 응모한 작품들은 총 9편으로 문학적 형상화 등 소설로서 구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작품들을 제외하고「그만두세요」를 가작으로 「포항행 직통열차」를 입선으로 선했다. 「그만두세요」는 달이 지구에 닿기까지 50년, 달리 말하면 지구멸망을 50년 앞둔 지구에서 50년 후 지구의 존재와 그 인류가 성취한 역사의 기록을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우주선을 띄우기 위해 데이터를 선별하는 나사 프로젝트에 참석하게 된 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구의 멸망이라는 상상력은 새롭지 않으나 지구멸망에 대비한 프로젝트 이야기와 아버지의 사망 후 마라톤을 시작한 어머니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변화와 속도에 대한 성찰이 흥미롭다. 「그만두세요」는 응모작들 가운데 가장 매끄럽게 글을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수행하는 작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다층적인 의미를 조금 더 명료하게 전달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 가작으로 선한다. 「포항행 직통열차」는 열차 안에서 만난 정체모를 여성의 시선을 경험하고 변해가는 다채로운 감정의 변화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문장이나 형식적 완결성이 아쉬움을 남기지만 분발의 의미에서 입선에 선한다.
[소설 가작] 그만해주세요
그만해주세요 달이 지구를 향해 접근해 온다는 뉴스를 접했을 땐 모두 패닉에 빠졌다. 가장 먼저 알아챈 건 나사였다. 나사는 세계가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해 발표하지 않았지만 몇몇 양심 있는 연구원이 나서서 이 사실을 알렸다. 뉴스와 언론들은 일제히 이 충격적인 사건을 보도했다. 연예인의 마약 투여나 만년 꼴찌 팀의 우승 소식은 더이상 뉴스에서 볼 수 없었다. 그 어느 보도에서도 ‘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멸망할 거라는 걸. 발표 후 며칠 동안 세상은 정말 혼돈에 가까웠다. 인터넷의 연결은 전부 끊겼고 한동안은 전기도 쓸 수 없었다. 한전에 근무하는 사람 중 누구도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매일 시끌벅적하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의외로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 시끌벅적하던 세상이 잠시 조용해졌다.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변한다는 할머니 말이 생각났다. 모두 겸허하게 종말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발표는 뒤집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정되었다. 당장이라도 달이 지구를 덮칠 것처럼 이야기하던 과학자들은 언론을 통해 당장 멸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대중들에게 소식이 늦게 전달되긴 했지만, 전기와 인터넷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자 대부분은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연구원들은 처음 지구의 멸망 소식을 알렸던 자리에 다시 서서 말을 꺼냈다. 그들은 자전과 공전, 공간 역학과 코스모스 이론 등의 단어를 써가며 복잡한 사정을 설명했지만, 요지는 이랬다. 달이 지구에 닿기까지는 50년이 걸린다. 달이 지구를 향해 오는 것은 맞지만 그 속력을 발표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달은 시속 1km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다가왔다. 사실 이것보다는 빠른 속도였지만, 지구의 자전과 달의 공전 궤도를 계산하여 직선거리를 구하면 달은 한 시간에 1km씩 지구로 오고 있는 셈이었다. 지구와 달의 거리는 매 순간 달라진다. 평균적으로는 384400km의 거리를 두고 회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말은 달이 지구로 오는 데 384400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이다. 384400시간은 대략 50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이 발표를 듣고서 들었던 생각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안도감도, 언젠가 죽을 거라는 불안도 아니었다. 그저 뭔가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는 생전에 그런 말을 남겼다. 하지만 50년이면 사과나무가 시들어 밑동만 남아도 충분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 충분한 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떤 사람은 50년 동안 명상을 하며 진리를 찾을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원했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 했다. 삶을 포기하고 폐인이 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직장으로 돌아와 평소와 같이 일을 했다. 어머니도 그랬다. 어머니는 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였다.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다. 그 후로 재미를 붙였는지 한 달에 한 번은 꼭 42.195km를 뛰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끈기야.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누가 먼저 그만두나 싸움이거든. 어머니는 매주 마라톤 코스를 뛰었다. 자신만의 연습 코스도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마추어 선수로 인정받을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지만, 지역 마라톤 협회에서 등록해 주었다. 35만원과 완주 경력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등록이 가능했다. 어머니는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내심 기뻐하는 눈치였다. 어머니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유명한 사회 운동가였다. 특히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향상에 힘썼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사회 운동을 해서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와 놀아주었다. 가장 많이 한 것은 텔레파시 놀이였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감고 나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췄다. 놀이를 한번 시작하면 최소 한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가 눈을 뜨고 자신이 보낸 텔레파시를 알아들었는지 물어봐야 게임이 끝났다. 나는 항상 텔레파시를 정확히 맞췄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떠오르는 단어를 문장에 맞게 조합할 뿐이었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머리, 전쟁, 고통, 사망. 전쟁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고통 끝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어떻게 알았냐며 나를 천재라고 띄워줬다. 나는 열두 살까지 내가 초능력자인 줄 알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천재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택시 사고로 죽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운동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탄 택시는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택시였다. 아버지가 활동하던 ‘전국 장애인 인권증진 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가 사고를 낼 확률은 1.2%라고 한다. 그중 사망사고는 0.2%다. 나는 확률로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을 느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마라톤을 연습했다. 첫 번째 코스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다. 택시를 타자고 했지만 말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족히 30km 떨어진 장례식장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어머니는 몇 시간 걸려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헐떡이며 말했다. -마라톤을 연습해야겠어. 그 후로 어머니는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반대했다. 덕분에 나는 제주도로 가는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먼 거리를 걸어 다니면 운동도 되고 좋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가 말한 운동과 아버지가 했던 운동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둘의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 운동 에너지란 움직이는 물체가 갖는 에너지를 뜻한다. 운동 에너지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과 속력의 제곱에 비례한다. 운동 에너지를 갖는 물체는 힘을 주는 방향에 따라 필연적으로 그 위치를 바꾼다. 나는 아버지의 운동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는 사회를 어디로 운동시키려 했을까? 사회의 질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운동하려면 아마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아버지나 ‘전국 장애인 인권증진 위원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사회는 운동 같은 걸로 움직일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끈기 있게 달리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죽으면 수목장을 해달라고 했다. 수목장은 천이백만 원이었다. 아버지를 경기도 인근 납골당에 모셨다. 뒤에는 꽤 넓은 숲이 있었다. 아버지 유언의 절반은 이룬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했다. 납골당은 위치 에너지와 같은 이치로 돌아간다. 함이 들어갈 자리가 양지거나 높은 위치일수록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버지의 자리는 맨 아래였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보려면 몸을 최대한 숙여야 했다.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보는 동시에 인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달이 지구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어머니는 훈련 시간을 밤으로 바꿨다. 달을 보면서 훈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달이 다가오는 게 느껴져요?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에게 시속 1km는 터무니없이 느린 속도다. 어머니보다 느린 속도로 오는 달은 어머니에겐 큰 위협이 아닐 것이다. -달을 보면서 달리면 내가 달이 된 것처럼 느껴져. 달리다가 힘들 땐, 달과 같은 속도로 걸으면 돼. 그러면 하나도 힘들지 않아.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두 물체가 완벽히 같은 속력으로 운동한다면 둘은 하나의 물체로 간주할 수 있다. 만약 어머니가 달과 같은 속력으로 걷는다면 어머니는 달과 같은 물체이다. 물론 현실에서 달과 같은 속력으로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완벽하게 같은 것은 없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차이가 있었다. 사회 운동가인 아버지와 달리 나는 사회성이 부족했다. 어릴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걸지 못했다. 할머니는 하나가 모자란 사람은 남들이 없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과학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었지만 어쩐지 믿음이 가는 말이었다. 나는 뭐든 과학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어렸을 땐 문학을 싫어했다. 문학은 비과학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내가 나타샤를 너무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는 내용이다. 그건 말도 안 된다. 눈은 구름 입자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올 때 낮은 온도에 의해 빙결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타샤에 대한 사랑은 날씨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나는 수업 시간마다 이런 오류들을 지적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봤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늘 혼자 다녔다. 그때는 왜 그런 눈으로 보는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사회적 요인들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사회적 시선으로 문학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과학의 방식으로 시를 읽는다면 진실이 보인다. 물론 지금은 그 시를 좋아한다. 나는 포트 스트롱의 책에서 비과학의 과학이라는 이론을 배웠다. 포트 스트롱은 과학자이자 건축가였다. 그는 건축 도면을 설계할 때마다 강박적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는 모든 걸 건축 효율성의 측면에서 생각했다. 그래서 커피를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게 커피포트다. 커피포트는 포트 스트롱이 죽고 난 뒤에야 빛을 봤다. 포트 스트롱은 커피포트를 상용화시킬 마음이 없었다. 그는 커피포트가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만 소유하길 원했다. 커피포트를 판 건 그의 유족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커피포트 그 자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커피포트만큼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창조물보다 부족한 창조자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커피포트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커피포트와 같이 묻어달라고 말했지만, 죽기 직전에 그 말을 뒤집었다. -그럴 필요 없겠어. 내가 커피포트니까. 나는 그의 유언이 어떤 시보다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커피포트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일종의 비과학이지만, 그는 커피포트와 같은 속력으로 운동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머니와 조금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달이 지구를 향한 지 34일이 지났고 지구에 34km 가까워졌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실업률과 자살률이 조금 높아졌지만 유의미한 변동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도 조금은 냉정해졌다. 50년 동안 마냥 죽음을 기다리기엔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크게 다가왔던 건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대책을 강구했다. TV에서는 거의 매일 전문가들의 토론이 생중계되었다. 가장 먼저 나온 의견은 50년 동안 과학을 발전시켜 달을 폭파하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영화학도거나 문학도라고 생각했다. 달을 폭파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달이 없었다면 지구는 진작 멸망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달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그보다 현실적인 의견은 속도를 늦추자는 의견과 화성으로 이주하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50년 동안 그럴만한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의견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장되었다. 토론에서는 매일 새로운 의견이 나왔지만, 그중 실현 가능한 것은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년이다. 물론 달이 지구와 충돌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죽어 있을 것이다. 달이 가까워지면 만조 시간이 늘어나 파도가 거세진다. 즉, 지구가 박살나기 전에 이미 인류는 바다에 잠겨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바다에 의해 문명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는 기간을 45년 정도로 예측했다. 그동안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바란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차라리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가장 신선했던 주장은 달을 잊어버리자는 의견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우리가 달을 모르는 상태라면 달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인식론적 관점으로 봤을 때, 우리가 모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뉴턴이 중력을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는 중력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세상은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달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가 되면 달이 충돌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황당해 보이지만 나름의 논리는 있었다. 국제사회도 그 주장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은 곧 지구를 기억하는 모두가 죽는다는 뜻이다. 지구와 인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죽는다면, 인류는 없었던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나사였다. 미국은 지구의 흔적을 우주에 남기기 위해 모든 기술력을 동원할 것을 천명했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결정된 사안이었다. 덕분에 대부분 국가의 지원을 약속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사의 계획은 단순했다. 지구의 존재를 알릴 만한 유산이나 기술을 우주선에 실어 태양계 밖으로 멀리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사는 빠르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광고를 전달하고 싶어했다. 유명하고 뛰어난 인재만 골라 포섭할 수도 있었지만, 나사는 획기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새 얼굴을 원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인터넷이었다. 나사는 구글과 결탁했다. 우주로 보낼 인류의 성과 중 하나로 구글을 넣는다는 조건이었다. 나사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구글에 돌아다녔다. 하지만 광고는 구글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나사 홈페이지에 연결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사이트로 연결되기도 전에 스팸으로 취급해 광고를 껐다. 나는 컴퓨터가 느려서 인터넷을 켜고 커피를 타는 버릇이 있다. 커피잔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돌아오자 화면 중앙에 ‘Google’ 대신 ‘NASA’가 적혀있었다. 커피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컴퓨터가 느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원방식은 글과 이력서를 써서 보내는 것이었다. 일종의 서면 면접이었다. 주제, 분량, 내용과 언어는 제한이 없었다. 다만 정해진 분야 중 하나를 선택해 그와 관련한 글을 써야 했다. 나사가 제시한 분야는 총 여덟 가지였다. 문화‧예술, 법학, 수학, 과학, 지질학, 역사학, 병리학, 천문학. 기준이 너무 모호하고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인터넷 상에 있었지만, 전 지구를 통틀어 최고 엘리트들이 제시한 가이드 라인이기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할 순 없었다. 나는 과학 분야에 지원했다. 분야별로 몇 명을 뽑는지, 발표는 언제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별 기대도 없었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11,161,715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당신이 뽑혔습니다. 나사가 주최한 프로젝트치고는 의외로 지원자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내가 뽑힌 건 이상했다. 일개 대학생의 글이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을 제쳤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외였다. 메일을 끝까지 읽고 나서 그런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귀하의 예술적 독창성이 잘 드러난 글을 읽고 마지막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귀하의 재능을 우리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보태줬으면 합니다. 나는 예술 분야 전문가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포트 스트롱의 책과 백석의 시를 통해 비과학의 과학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글을 제출했다. 설사 내 글이 문학적 글쓰기로 오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의 문인을 제쳤다는 이야기였다. 나사가 과학 집단이기 때문에 예술적 지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 분야로 뽑혔다고 해서 나사의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거절하는 순간 나는 학교에 복학해 경제학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이제 경제학의 수명은 오십 년이다. 경제학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인류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사 측에서 프로젝트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 충분히 되었을 때 상당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다른 분야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각 분야의 전문가였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사람도 제법 있었다. 서로의 신분은 알 수 없는 게 원칙이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이미 인스타그램에 프로젝트 합격 사실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4년제 대학교 재학생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도 알고 있다. 나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존 루터였다. 프로젝트의 총괄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이 프로젝트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초에 새로운 인물을 뽑으려 진행한 광고였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나는 취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존 루터가 나를 지지했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건 한 달 뒤 나사의 호출로 그를 만났을 때였다. 모든 경비는 나사 측에서 부담했다. 자비 부담이 원칙이었지만 나는 특별 케이스라고 했다. 그들도 나의 특별한 주머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여행이라고 둘러댔다. 괜히 걱정을 끼치긴 싫었다. 내가 지구의 운명을 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머니는 당장 나사 본부가 있는 텍사스까지 달려올지도 모른다. 루터는 나를 회의실로 불러냈다. 회의실 앞엔 ‘Staff Only’라고 적혀있었다. 나도 스태프로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는 중에 당신의 글을 읽었습니다. 루터가 나에게 처음 했던 말은 그랬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한참 말을 이어갔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화방식을 종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성을 내다가, 또 양손을 잡고 나를 칭찬했다. 나를 뽑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커피를 마시던 중에 글에서 커피와 관련된 글이 나오자 나와 뭔가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했던 텔레파시 놀이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존 루터도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루터를 자주 봐야 했다. 그는 우리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나사 본부가 있는 휴스턴 근방 호텔에 머물렀다. 서로는 절대 만날 수 없었다. 잠깐 마주치더라도 대화는 금지되었다. 어차피 그들과 대화는 불가능했다.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요일마다 다른 일정이 정해져 있었다. 월요일에는 책을 읽고, 화요일에는 음악을 듣게 했다. 영화를 보거나 잠만 자는 요일도 있었다. 보고 싶은 장르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로맨스 소설, 헤비메탈, SF영화. 루터는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고 듣고 읽게 했다. 덕분에 나는 고어 영화를 하루에 4편이나 본 적도 있다. 정말 누군가를 죽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경제 수업을 듣는 게 더 인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게 훈련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인류의 성취를 모두 파악할 수 있을까요? 루터는 불만을 표하는 참가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의 기준은 기록이다. 몇백 만년동안 축적된 인류의 기록을 전부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나사의 최종 목표는 우주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나사는 모든 UN 가입국 중에서 뛰어난 사람을 뽑아 우주로 보낼 데이터를 선택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일곱 개의 분야도 더욱 세밀하게 나뉘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자신의 지원 분야와 상관없이 훈련에서 드러난 특성을 통해 각 분야에 배정되었다. 소분류까지 합하면 총 47개의 분야였고, 적게는 다섯 많게는 스무 명이 한 분야를 담당했다. 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대중예술을 맡았다. 내가 음악과 미술 관련 컨텐츠에 두각을 드러냈다는 게 그들의 평가였다. 작업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이루어졌다. 나사는 참가자들을 모아 미국에서 포럼을 가졌다. 참가자들의 선택에 대한 반발을 우려해 대중에 공개하진 않았다.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대중적인 예술작품을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한 글을 보내야 했다. 나는 너바나의 노래 「Smells Like Teen Spirit」로 결정했다. 가장 과학적인 작법으로 만들어진 노래라고 생각했다. 「Smells Like Teen Spirit」은 ‘십 대 같은 냄새가 나’로 직역할 수 있다. 나는 그게 락스타의 정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분류 방법으로는 십 대의 냄새를 정의할 수 없다. 인간은 어릴수록 시각적 이미지보다 후각적 · 청각적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 여덟 살부터 감각에 대한 기억력이 발달해 스무 살 정도에 정점을 찍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냄새와 소리까지 생생하게 남는 기억은 대부분 십 대 시절이다.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은 얼굴에 샷 건을 쏴서 자살했다. 자살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이미 치사량의 헤로인을 주입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돈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여자관계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타살이라는 음모론도 돌았다. 언론에서는 십 대의 우상이 몰락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죽음 이후에도 식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십 대들의 우상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머리에 샷 건을 쏘고 싶은 게 십 대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커트 코베인은 죽는 순간까지 락스타였다.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단 한 번에 불타는 게 낫지. 유서에는 락스타의 부담감과 무대 뒤에서의 공허함이 조금은 산만한 글씨체로 적혀있었다. 장례식은 그가 주로 머물던 시애틀 근방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에는 의외로 사람이 적었다. 그의 장례식을 찾아오지 않은 건 팬들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Smells Like Teen Spirit」은 아무 의미 없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노래가 나왔을 땐, 평론가들이 음악의 종말을 운운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게 치밀한 계산을 통해 나왔다고 믿는다. -안녕. 안녕. 안녕. 제정신이냐? 너바나의 팬들은 가사가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려 애썼지만 그 누구도 시원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평론가들은 내용이 없는 단어의 나열일 뿐이라며 그의 가사를 비판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너바나의 가사에는 내용 따위 없었다. 그런 건 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공격적인 가사로 맞춰지는 운율과 리듬감이었다. 이 노래는 시끄럽고 불길하고 기괴하면서 십 대의 냄새가 난다. 노래를 듣게 될 외계인도 그렇지 않을까? 나사는 각국의 인재들이 뽑은 자료들을 수집해 데이터 칩에 내장했다. 실물로 보낼 수 있는 것들은 칩과 함께 우주선에 태우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이삭 줍는 여인들」을 실물로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지만, 보관상의 문제로 사진이 담긴 데이터만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우주선이 얼마나 오래 우주를 떠돌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그림이 멀쩡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림을 실물로 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이삭 줍는 여인들」을 선택한 캐나다인 마크 루틀러 씨는 크게 반발했다. 그의 직업은 농부였다. 나는 그가 정말 ‘이삭 줍는 여인들’의 실물을 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왜인지 믿음이 갔다. 데이터는 소형 칩에 들어있었다. 문화, 예술, 역사, 경제, 수학, 철학, 언어 등 인류 문명의 정수만 모아 놓은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내가 고른 것도 있었다. 데이터들에 대한 설명은 영어였고, 그 뒤에 여러 나라 언어의 번역본을 붙였다. 전문 텍스트를 읽어주는 음성 파일도 들어있었다. 선택된 노래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있었고 처음 들어본 노래도 있었다. 존 레논의 「Imagine」은 무려 11명이 선택했다. 너무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좋은 노래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유명한 과학 이론이나 난제를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혹은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 사건, 사고를 선택하기도 했다. 인류의 7대 미스터리도 그중 하나였다. 이걸 선택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분야를 맡은 건지 궁금했다. 나는 미스터리 따위를 우주에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걸 선택한 사람들은 어쩌면 답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수수께끼가 영원히 풀리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사는 이 프로젝트가 총 20년간 진행된다고 했다. 당장 우주선을 올려보낼 수는 있지만, 어느 궤도로 보낼지, 또 우주선 속 데이터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등등 아직 결정해야 할 게 많았다. 확실한 건 우주선을 지구에서 최대한 멀리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달과 지구의 충돌은 다른 행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쩌면 태양계에 영향이 갈지도 모른다. 우주선이 무사히 전달되려면 최대한 멀리 보내는 수 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상 지구에서 가장 멀어졌던 우주선은 보이저 1호다. 나사는 1977년 경쟁적인 우주선 개발에 힘입어 보이저 1호를 발사했다. 보이저 1호는 41년 동안 약 2억6천만km를 이동했다. 보이저호는 10년 정도 태양계를 머물 것이라는 초기 예상과 달리 여전히 우주를 떠돌고 있다. 지금은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에 있다고 한다. 보이저호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레코드판이 들어있다. 그 레코드에는 아기 울음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녹음되어 있다. -이건 외계인을 위한 선물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 존 루터였다. 관계자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좋은 이벤트로 생각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적지 않은 호응을 이끌었다. 하지만 루터는 레코드판이 외계인을 만나길 원했다. 보이저호는 지구가 멸망하는 순간에도 우주를 돌아다닐 것이다. 아니면 이미 외계인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2억6천만km라면 그럴 수 있다. 우주를 떠돈다는 건 마라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주를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요?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끈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42.195km와 2억6천만km의 차이는 크다. 우주에서도 정말 끈기 있게 달리다 보면 목적지가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나사는 참가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돈은 물론이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도 했다. 마크 루틀러 씨에겐 ‘이삭 줍는 여인들’ 진품을 선물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우주선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무리한 부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루터는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다. 우주에 나의 기록을 남긴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막상 뭘 선택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건 텔레파시였다. 나는 텔레파시를 담은 칩을 우주선에 싣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역시. 루터는 뭔가 통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단어를 신중히 골랐다. 우주에 텔레파시를 보내는 건 다시 없을 기회였다. 수신자가 아버지일지 외계인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상, 우리, 정착, 변화. 아버지는 천재이기 때문에 단어를 잘 조합할 것이다. 물론 텔레파시가 아버지에게 도착할 때면 이미 지구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땐 직접 만나서 전달하면 되니까. 프로젝트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우주선에 들어갈 데이터를 선별하는 작업은 프로젝트의 초반 단계였다. 중요한 건 우주선의 완성이었다. 외계인을 만날 때까지 안전하게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어야 하기에 내구성이 중요했다. 50년이면 충분하다고 루터는 확신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루터는 그 후로도 가끔 메일을 보냈다.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 단체로 보내는 메일인 것 같았다. 대부분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어떨 땐 새로운 아이디어를 묻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제목만 보고 내용은 읽지 않았다. 읽으면 답장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없는 사이에 훈련 강도를 높였다. 본격적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어머니가 준비하는 대회는 제10회 서울국제마라톤대회였다. 전 세계의 아마추어와 프로가 나오는 큰 규모의 대회였다. 성별 제한도 없었다. 어머니의 목표는 십 위 안에 드는 것이었다.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의 세계에서 중요한 건 끈기보다 속도였다. 어머니의 평소 기록은 수위권에 들기엔 너무 느렸다. 나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 있어 보였다. 이재윤 (경제금융학부) 2023년도 열심히 살라는 뜻에서 상을 주신 것 같습니다! 4학년을 앞두고 있는데 소설과 학업 두 분야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고 싶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큰 응원을 받아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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