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 양종훈 교수, 세상을 바꾸는 사진을 이야기하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스페인 내전의 실상을 가감 없이 풀어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셔터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작가들의 렌즈를 고정 시키고 있다. 단순히 찍는다를 넘어, 사회를 건강한 길로 이끄는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양종훈 교수는 오늘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많은 미디어가 난립하는 21세기 속에서도, 양종훈 교수는 세상의 밝은 면, 어두운 면 관계 없이 조리개에 빛을 담아낼 뿐이다. 양종훈 교수는 국내 최정상급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스와질란드(現 에스와티니)의 에이즈 실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에이즈 환자들을 마음으로 포용하는 김혜심 교무를 담아낸 '블랙마더 김혜심', 사라져가는 제주 해녀에게 다가가 그들의 인생을 조명한 '제주 해녀 사진 특별전', 엄홍길 대장과 동행하여 극한을 이겨낸 인간을 다룬 '히말라야로 가는 길' 등 다양한 작품에서 양종훈 교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묵묵히 피사체를 담아낼 뿐이다. 피사체에 반사된 빛을 통해 양종훈 교수는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국내 최대 언론사인 조선일보에서 양종훈 교수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조명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 그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뷰 전문 https://www.chosun.com/opinion/2024/03/11/SEYIS2KDPJDFDFUBAFNG5NKVRU/
방송작가에게 “왜?”라고 물어보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적응 속도를 능가하고 있다. 신기술에 적응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도전을 하며, 그 속에서 엄청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물 중, 혁신적인 것들은 “왜?” 라는 질문과 함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며 시대의 아이콘이 되곤 한다. 유튜브 조회수 100억 회의 시대가 왔다. TV에서나 보던 연예인, 전문가들이 유튜브 채널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뿌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릴스와 틱톡 챌린지는 아이돌 PR의 장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이제 방송국의 경쟁자는 콘텐츠 플랫폼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트렌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낮은 진입장벽과 높은 접근성을 두루 갖춘 콘텐츠 플랫폼은 문화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급변하는 플랫폼 경쟁 속, 방송국은 정말 쇠퇴하는 플랫폼인 걸까? 필자는 방송국의 강점에 주목한다. 뉴스, 시사교양과 같은 전문적이고 공익적인 콘텐츠, 드라마 및 음악방송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요소 등은 자본과 지속성을 갖춘 방송국만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특히 체계성을 바탕으로 한 공익 콘텐츠는 사회적인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콘텐츠 플랫폼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방송계 종사자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우리 대학 동문인 홍세화 방송작가(SBS ‘그것이 알고 싶다’, ‘과몰입 인생사’ 등 제작 참여)를 만나보았다. 여러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홍 작가는 주목 받아야 할 사건을 통해 사회적 화두를 던지면서, 트렌디한 교양 프로그램으로 더욱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방송작가의 관점에서 본 방송 이야기는 물론 방송작가의 삶, 일상에서 듣기 어려웠던 방송 비하인드, 후배들을 위한 아낌 없는 조언까지 모두 준비해 왔다. 그렇게 방송작가에게 “왜?”라고 물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이번 상명피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상명인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홍세화 (이하 ‘홍’):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공간환경학부 17학번 졸업생 홍세화입니다. 현재 햇수로 2년 차 경력의 방송작가로 활동 중이고요, 최근 SBS의 <과몰입 인생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취재작가로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시즌1이 마무리되어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Q: 소개 감사합니다. 사실 여쭤보고 싶은 게 정말 많습니다. 아무래도 방송계에서 일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어서, 저뿐만 아니라 이 인터뷰를 보실 상명인 분들도 여러 가지 궁금한 게 많으실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홍: 네, 오늘 흥미롭고 유익한 답변 많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Q: 우선은 방송작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많은 분께서 방송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 혹은 ‘방송을 보조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실 거예요. 실제로 어떤 업무를 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홍: 우선 방송작가의 업무를 한마디로 딱 ‘이거다!’라고 정의하긴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참여했던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이야기해 드리자면, 작가는 프로그램의 토대가 되는 자료조사, 사전 인터뷰, 출연진 섭외, 대본 작성 등 방송 전반에 걸친 일을 담당한다고 보면 돼요. 어떠한 프로그램의 기획안을 PD님께서 작성하셔서 그 기획안이 통과돼 제작까지 확정된다면, 그 기획안을 주제로 방송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뼈대부터 차근차근 조직하고,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죠.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대본’이 작가들의 큰 업무 중 하나인데요, 대본은 일정 연차 이상 쌓인 작가님들께서 주로 대본을 작성해주세요. 프로그램의 성공은 대본과도 직결된단 말이 있을 정도로 대본은 정말 중요한데요, 본인의 대본으로 방송을 어느 정도 진행해 본 경험이 있는 연차 쌓인 작가님들께서 ‘서브(대본)작가’로서 대본을 작성하고, 보통 10년 차 이상 경력의 ‘메인작가’님들이 대본 작가님들께서 작성하신 대본을 손봐주시기도 하고,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구성을 만들고, 다듬는 역할을 해주십니다. 제가 현재 일하는 ‘취재작가’라는 포지션은 흔히들 말하는 ‘막내작가’ 포지션인데요, 기초적인 자료조사와 취재원과의 사전 인터뷰 등 다양한 업무를 맡으며 메인 작가님과, 서브(대본) 작가님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말씀드린 업무 형태는 어디까지나 제가 경험해 본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의 시스템이고, 여타 다른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는 달리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Q: 일반 회사로 치면, 과장이나 팀장급부터 대본을 쓴다는 느낌이겠네요. 홍: 그런 느낌이죠. 사실 대리 정도부터도 대본을 쓸 수는 있어요. 다만 저희가 흔히 아는 1시간짜리 프로그램의 대본을 통으로 쓰기는 어렵겠죠. 시사교양국에서는 보통 2-3년 차부터 소위 말하는 ‘입봉’을 하면서 자신만의 대본을 작성할 수 있게 되는데요, 아침 방송 속 10분 내외의 짤막한 코너의 대본을 쓰는 방식으로 입봉하게 됩니다. 저도 연차로만 따지면 입봉할 때이지만, 저 같은 경우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취재작가로서 일을 해보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 내실을 다진 후 입봉을 하는 게 현재로서의 목표라 아직은 입봉을 미뤄둔 상황이에요. Q: 현재 일에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게 정말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인터뷰 자료조사를 하다 찾았는데, 공간환경학부 출신이셔서 조금 의외였습니다. 물론 전공 = 직업은 아니지만, 사실 작가라는 직업과 전공의 연결이 쉽게 연상 되지는 않았거든요. 홍: 선배 작가님들도 처음에 제 전공을 들으시곤 다들 놀라시는 편이에요. 보통 ‘지리학’, ‘주거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지금 작가의 일이랑은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 편이긴 하죠. Q: 그런데도 방송작가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홍: 솔직히 말하자면 ‘우연’이었어요. 아마 졸업반 분 중 몇몇은 공감하실 거예요. 졸업을 앞두고 ‘아, 나 이제 뭐 해 먹고 살지?’라는 생각이 덜컥 들었죠. 그래서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보자!’란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바로 졸업하기보단, 졸업 유예를 하고 여러 활동을 하며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당시 가장 관심 가졌던 분야가 ‘디지털 콘텐츠 마케팅’이었습니다. 평소에도 OTT 서비스를 많이 이용했고, 콘텐츠 소비를 많이 하던 편이다 보니 자연스레 ‘콘텐츠’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죠. 그래서 디지털마케팅 전문 광고회사에도 입사하게 되며, 일을 시작해 보았는데, 막상 제가 생각한 직무와는 약간의 괴리감이 있어 흥미가 떨어지던 중이었어요. 이직을 고민하던 도중, 우연한 기회로 방송업계에 종사하시는 지인분께 “방송작가 한 번 해볼 생각 없니?”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방송국’ 속 세계는 제가 전혀 모르는 세계이다 보니 두렵기도 했지만, 그간 저의 관심사와도 많이 부합하고, 또 ‘이런 기회가 언제 올까?’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도전해 보자!’란 생각으로 방송작가의 길에 발을 들이게 됐어요.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웬만한 결단력 없이는 도전하지 못할 상황이었네요. 그럼에도 도전 정신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있었을까요? 홍: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실은 제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도를 지나치는 무모한 일이었다면 고민을 해보겠죠. 그렇지만 방송작가 제의는 ‘내가 원하던 분야의 일’, ‘흔치 않은 기회’, ‘그동안 다양한 일들로 얻은 경험’과 ‘시기’ 등, 여러 조건과 상황이 받쳐준 덕분에 ‘충분히 해볼 만하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줬죠. 그래서 여러 복합적인 요소 덕분에 ‘도전해봐야겠다!’라고 결단할 수 있던 것 같아요. Q: 많은 분이 홍 작가님의 마인드에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 서두에 이야기해 주신 것처럼, 방송작가로 2년간 활동하셨는데 그동안 참여했던 프로그램들을 간략히 알 수 있을까요? 홍: 우선 방송작가로서 첫걸음을 뗄 수 있던 프로그램은 채널A의 <행복한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이에요.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6개월간 참여하면서 ‘작가’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를 대략적으로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함께 일하시던 작가님 한 분이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참여하시게 되었는데요, 감사하게도 그 작가님께서 제게 “함께 그알에서 일해보지 않겠니?”라고 제안해 주셔서 그 길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1년간 취재작가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9월부터 2023년 9월까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1년간 함께 일하고, 이후 새로운 플롯의 프로그램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SBS의 스토리텔링형 신규 교양 프로그램인 <과몰입 인생사>에 지원해 새로이 일을 시작했고, 올해 2월 중순까지 함께 일하며 시즌1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Q: 지금까지 참여하셨던 프로그램의 성격이 다양한 편이네요. 프로그램의 성격만큼 작가와 스태프들의 분위기나 스튜디오 스타일도 상당히 다를 것 같습니다. 각각 프로그램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굉장히 다양할 것 같은데, 간단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홍: 먼저 <행복한 아침>은 아침 생방송이다 보니 시청층이 장년층 이상, 노년층에 가까운 편이에요. 그래서 이분들의 관심사에 맞는 주제는 물론, 게스트 섭외도 시청층에 맞는 분들로 진행하곤 합니다. 신신애 선생님과 전원주 선생님께서 게스트로 각각 출연해 주신 적이 있는데요, 두 분 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워낙 유명한 분이시기도 하고, 당시 매니저나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을 드려 섭외했던지라 제가 아침 일찍 방송국 앞으로 모시러 갔던 게 기억에 남아요. 신신애 선생님께서는 가끔 안부 메시지를 보내주실 정도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 외에도 많은 작가 선배, 출연자 분들과 좋은 인연을 쌓을 수 있었어서 지금까지도 제게 감사한 프로그램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경우는, 현재까지 저의 방송작가 경력 중 가장 오랜 기간 일했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아요. 그알은 회차별로 담당 PD와 참여 작가들이 다른데요, 그러다 보니 저는 1년간 총 7개 회차의 방송 제작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제일 처음 참여한 ‘양산 모녀 실종 사건’이에요. 4년간 실종 상태였던 모녀를 찾기 위해 저희가 취재를 거듭한 결과 극적으로 찾아낸 회차였는데요. 장기 실종으로 전환돼 경찰 또한 난항을 겪을 만큼 어려운 사건이었음에도 저희의 취재를 통해 실종 사건을 해결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던 회차였습니다. 그리고 해당 회차가 방송되던 날,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는데요. 방송 모니터링을 하던 도중 갑작스레 접한 소식이라 충격과 안타까움이 컸고,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참사 발생 직후 거의 모든 제작진이 합심해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취재하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최근에 참여했던 <과몰입 인생사>에서는 많은 상명인들의 도움을 받아 기억에 남는데요. 먼저 <과몰입 인생사>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짧게 소개해 드리자면, ‘역사적인 인물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하는 대체 역사와 관련된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저희가 역사적 인물의 또 다른 선택으로 인해 펼쳐질 현실에 대해 상상할 때, 아무런 근거 없이 이야기하면 안 되잖아요?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면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으로 방송이 제작되는데요. 4회차의 인물이 비틀스의 ‘존 레넌’이었습니다. ‘존 레넌의 다른 선택으로 냉전 시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 라는 대체역사에 대해 당시 소련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었는데, 역사콘텐츠전공의 류한수 교수님께서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 유명하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팀에 류 교수님 섭외를 제안했고, 팀 회의를 거친 결과 섭외 요청을 드려보자는 결론이 났습니다. 강의와 여러 방송 활동으로 인해 바쁘신 와중에도 교수님께서 같은 상명인으로서 흔쾌히 요청에 응해주시게 되어 무사히 인터뷰 촬영을 마치고 방송 제작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류한수 교수님 이외에도, ‘앙드레김’ 회차에는 패션계에 관해 설명해 주실 전문가로 의류학과의 양희순 교수님께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양희순 교수님께서도 갑작스레 연락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자문에 응해주시고, 유익한 인터뷰 내용으로 방송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두 교수님께 매우 감사드렸고, 사회에 나와서도 상명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Q: 굉장히 다양한 일들이 있었군요. 때로는 따스함을, 때로는 안타까움과 극복을, 또 때로는 작은 인연이 작가라는 직업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투영하는 것 같습니다. 잠깐 숨을 돌릴 겸, 또 많은 분이 궁금해하실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방송국에서 일하시는 만큼, 많은 연예인을 마주하실 것 같아요. 실제로 방송에 게스트가 나오는 경우도 많을 텐데, 혹시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본 적이 있으신가요? 홍: 제가 페퍼톤스의 팬이에요. 얼마나 좋아하냐면 올해 새해 첫 곡으로 페퍼톤스의 ‘행운을 빌어요’를 들었을 만큼 페퍼톤스의 노래를 좋아하는데요, 과몰입 인생사 6회의 게스트로 페퍼톤스의 이장원 씨가 출연하신 거예요. 정말 지적이고 훈훈하시고, 친절하셨어요. 모든 촬영이 끝나고 같이 사진까지 찍어주셔서 행복했습니다. 힘든 업무 속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어 잠깐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Q: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성공한 팬이 되셨다는 게 정말 부럽습니다. 약간 이어지는 질문인데요, 지금까지 참여하셨던 프로그램들을 복기해보면 시사교양적인 성격의 프로그램이 많은 편인데, 혹시 시사교양 위주로 참여하시는 것 역시 작가님의 선호와 연결되어 있을까요? 홍: 딱 잘라서 ‘맞다, 아니다’ 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아요. 복합적인데요, 첫 프로그램의 경우 작가라는 일을 배우는데 조금 더 무게를 뒀었고,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좋은 기회를 얻어 참여한 것이라 도전에 조금 더 가까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교양국에서 활동하면서 시사교양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는 물론, ‘동물농장’이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와 같은 프로그램 역시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거 알고 계시나요? 단순히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의 역할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적 약자의 확성기 역할을 하는 것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매력에 빠져 지금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조금 더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Q: 작가님의 바람대로, 세상을 비추는 등불로 모두를 밝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차기작에서도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이제 방송 관련 질문을 마지막으로 하나 드릴 텐데요. 최근 유튜브 및 숏폼과 같은 콘텐츠의 다양화로 인해 기존 TV 프로그램의 경쟁력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TV가 신규 콘텐츠 플랫폼에 비해 강점을 가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에 쇠퇴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트렌드에 맞추어 변화하는 부분 역시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업계 종사자 관점에서, 이에 대한 간단한 의견 나눠주실 수 있으실까요? 홍: 아직 2년 차이기에 제 의견이 업계 모두를 대변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방송계 역시 변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나 제가 참여한 ‘과몰입 인생사’를 예로 들어보자면, 시사교양임에도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예능적인 모먼트를 부각하려고 해요. 이는 콘텐츠의 양적 포화 시대에서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더 쉽고, 더 즐겁게 다가가기 위한 일환인데요. 특히 새로운 프로그램일수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TV 외의 플랫폼을 활용하는 등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방송국 역시 TV에 국한되지 않고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고요. 그래서 든 생각이, 플랫폼 자체의 경쟁력이 아닌 그 속의 콘텐츠 경쟁력이 더 중요해진 시대가 온 게 아닐까, 나아가 종사자들의 비전이 더 다양해지고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방송과 관련해 정말 좋은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덧 인터뷰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마무리 전에, 작가님의 대학 생활과 관련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저도 작가님과 같은 시기 대학 생활을 했었는데, 저는 학창 시절 작가님을 굉장히 열심히 사는 학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혹시 학창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주실 수 있나요? 홍: 특별히 열심히 살았다기엔, 상명대 학우 대부분이 열심히 살고 계시잖아요? 전공 공부는 물론, 다양한 대외활동과 공모전에 참여하고, 자격증이나 어학성적을 위해 다들 열심히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까지 벌며 생활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습니다. 다만, 제가 그런 이미지로 보였던 것은 아무래도 인문사회과학대학 부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학우와 만나다 보니 그런 게 아닐지 생각합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게 아닐지 생각도 들고요. 많은 것도 배우고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얻으신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홍: 입학하고 나서 2학년까지는 주로 우리 학과 학우들하고만 어울렸어요. 그런데 부학생회장을 하게 되면서 다른 학과 학우들과도 친분을 트게 되고, 여러 행사를 준비하면서 다른 단과대 학우들과도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또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작가 일을 하면서 직업의 특성상 다양하고, 폭넓은 인간관계가 중요한 분야라는 것을 느꼈는데요, 학생회 활동을 하며 얻게 된 좋은 인연들이 결과적으로 작가 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제가 상명대학교에서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생회 활동을 하며 얻은 강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학 생활인 만큼 전공도 빼놓을 수 없겠죠? 저 같은 경우는 공간환경학부에서 지리학을 심화 전공했습니다. 사실 지리학은 굉장히 인문학적인 분야인데요, 단순히 지형과 지역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현상 전반을 다루기 때문에 시사교양에 필요한 지식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지리정보시스템은 특정 지역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화 하는데 용이해 실제 취재 시에도 종종 사용되기도 해요. 비록 직접적으로 전공과 직업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방송 작가와 연관되지 않은 전공이었기에 방송 제작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됐다고 느꼈습니다. 전공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만의 강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덕분에 유익한 이야기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를 꿈꾸는, 나아가 사회에 한 걸음 내디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홍: 우선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공보다는 본인의 강점을 파악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존경하는 작가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어요. “작가는 질문하는 직업이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단순히 글을 쓰고 무언갈 만드는 것이 작가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 앞에 ‘왜?’라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혹은 타인에게 결과를 끌어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로 거듭날 거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작가가 아니라 그 어떤 직업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자신에게 질문을 하면서 강점을 찾고 발걸음을 내디딘다면, 분명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Q: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홍세화 작가님과 함께하는 2024년 2월 상명피플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홍세화 작가님 감사드립니다. 홍: 수고하셨습니다. 홍 작가의 말에는 단단함이 있었다. 본인의 강점을 알고 도전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오늘도 취재를 나서는 홍 작가의 다음 프로그램이 기대된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홍 작가의 모습은 우리 상명인들이 배워야 할 자세라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하는가? 그 질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뒤처짐이 아닌, 세상을 선도하며 앞장서는 방송을 만들고자 하는 홍 작가의 노력이 “왜?”라는 질문에 몸소 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기획: 대외협력처 커뮤니케이션팀
네이버웹툰 정식 연재을 앞둔 K웹툰의 차세대 주자
우리대학 디지털만화영상전공 4학년 김효린 학생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네이버웹툰이 주최한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에서 7위에 선정되었다.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은 매체 연재 또는 출판 경력이 없는 신인 만화가와 우수한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2012년도부터 개최되온 공모전이다. 전문가 심사와 독자투표를 통해 선정된 작품은 네이버웹툰에 공식 연재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졸업전에 네이버웹툰 공식 연재를 확정하고 꿈에 그리던 웹툰작가로 첫발을 내딛는 김효린학생을 만나 수상소감과 함께 상명대학교에서의 대학생활을 들어보았다. 1.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에 응모하게 된 계기와 7위에 올라 네이버웹툰에 정식으로 연재하게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졸업 전에 유의미한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전부터 동경하던 공모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김병수 교수님의 방학 중 공모전 특강을 통해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비록 특강 내에 완성은 어려웠지만 이후 졸업 작품으로 보완하고 준비하면서 2023 네이버 웹툰 최강자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정식 연제를 하게될 줄 몰랐습니다. 웹툰작가로 데뷔할 수 있늘 기회가 주어져서 기쁩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열심히 연재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은 전문가 심사와 독자 투표로 진행된다고 알고있습니다. 응모된 작품수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심사되는지 궁금합니다. 예선에 참가한 약 500여 작품 중에서 전문가의 예선 심사을 통해 100개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1라운드, 2라운드, 파이널 라운드를 거쳐 8개 작품이 최종 선정됩니다. 선정된 작품은 네이버웹툰에 공식으로 연재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집니다. 3. 웹툰 작가로 김효린 학생의 필명과 정하게 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제 본명인 '김효린'에서 가운데 자만 바꿔서 '김서린'으로 필명을 사용하고 있어요. 특별히 튀는 필명을 짓지 않은 이유는 나중에 필명이 유치해서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평범하고 무난하게 짓게 되었습니다. 4. 본인만의 슬럼프 관리방법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만화하는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평소에 스토리와 콘티를 짜고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슬럼프에 들지않기 위해 작화에 더 주력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사람과 대화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다보면 결국 슬럼프는 극복되는 것 같습니다. 5. 이번 네이버웹툰 최강자전 7위에 오른 작품의 제목과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목은 <어째서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거야?!>입니다. 모두에게 미움만 받던 악역 전문배우 권사라가 자살 후 깨어나 보니 10년 전 고등학생으로 되돌아 가게 됩니다. 그후 어째서인지 미움만 받던 권사라가 모두에게 사랑받게 된다는 힐링(?) 라이프를 그린 로맨스 드라마에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되었습니다. 주인공이 갑자기 모두에게 사랑받게 되는 점이 포인트인데 어째서 사라가 모두에게 사랑받게 되었는지 진정한 내막이 궁금하시죠?! 우선은 아래 사이트를 참고해 주시면 호기심이 조금은 해소되실 것 같습니다. https://comic.naver.com/navercontest/2023/detail?titleId=93&round=FINAL&sortType=RANDOM&genreGroup=ALL 2024년 8월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될 <어째서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거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6. 이번 수상작의 제목을 길게 지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외에 마음이 가는 등장인물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긴 제목으로 작품의 전개를 어느정도 요약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요즘 트랜드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괴롭히는 역할에 충실한 인물이 있습니다. 괴롭히는 것은 나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저에겐 아픈 손가락과 같습니다. 7.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실 제가 조언을 드릴 위치는 아니지만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얻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도전하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변화를 경험해 보세요. 결과에 관계없이 관심있으시다면 도전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어떤 작품이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전을 멈추지않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8.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전공을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고 전공의 장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디자인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껴서 이전부터 흥미를 느꼈던 만화 분야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명대학교는 4년제이기 때문에 웹툰 작가로 더욱 내공있게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데뷔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일자리를 찾을 때 이점이 있을 거하고 생각해서 지원했습니다. 전공의 장점은... 역시 자율적인 창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분위기 입니다. 그래서인지 봇물 떠지듯 좋은 작품과 작가들이 배출되는 것 같습니다!! 9. 대학 재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대학생활에서 학생회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타인을 이해하고 인물과 캐릭터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후배들과 다양한 교류를 하고 총회, 과제전, mt 준비 등의 활동을 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학번이 많이 위인 선배여서 불편할 수도 있는데 먼저 다가와 준 학생회 친구들 덕분에 대학생활이 더 즐거웠어요. 다시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추억입니다. 디만영 학생회 파이팅~~!! 10.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전공 출신 연재 작가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기억나는 작가들의 작품과 필명을 최대한 부탁드립니다. 알려진 분 중에서는 <외모지상주의> 박태준 작가님, <중증외상 센터> 홍비치라 작가님, <양아치의 스피치, 안녕, 엄마, 내 눈에 콩깍지> 김인정 작가님, <그들에게 사면초가> 소이 작가님, <까면서 보는 해부학 1,2> 압듈라 작가님, <송곳> 최규석 작가님, <재앙은 미묘하게> 안성호 작가님, <자살 소년> 박지 작가님, <원미동 사람들(만화판)> 변기현 작가님, <귀신 선생님 시리즈> 남동윤 작가님, <고마워 다행이야> 장대현 작가님, <우리는 우연히 그리고> 한민기 작가님, <후서유기> 최경민 작가님, <가깝다고 생각하면 가까운> 검둥 작가님, <장미아파트 공경비> 박병규 작가님, <당신만 몰라!> 유리아 작가님, <영수의 봄> 이윤희 작가님, <둥굴레차!> 기라3 작가님, <아이언 걸> 이대행 작가님, <인생은 강호> 이지원 작가님, <격기3반> 이학 작가님, <소녀의 세계> 모랑지 작가님, <한번 더 해요> 구구 작가님, <그녀는 흡!혈귀> 정성완 작가님, <금빛도깨비 쿠비> 김성주 작가님, <광장> 김균태 작가님, <앙쌍블> 유비 작가님, <야나와 다리> 이상미 작가님, <웰컴 투 고스트시티> 유들 작가님, <옥탑의 전설> 우주용 작가님, <밀웜> 쿼시 작가님, <두근워치> 홍차 작가님, <그다이> 최용성 작가님, <잠자는 공주와 꿈꾸는 악마 작화 담당> Kirty 작가님, <오늘부터 공화정> 지다리 작가님 등이 있습니다. 공개적인 곳에서 출신 학교를 언급하지 않는 작가님도 있어서, 저희가 알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1. 김효린 학생의 꿈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졸업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본격적으로 연재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열심히 작품 준비해서 하루 빨리 독자님들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따듯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 창작을 멈추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 12. 마지막으로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전공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험생들에게 응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란, 부담스럽고 힘든 시기라고 생각해요. 특히 친구들에 비해 실적이 부족한 것만 같아서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장점을 생각하면서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원한는 입시 결과를 성취하시길 응원합니다. 상명대학교 후배로 오신다면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상명대에서 키워나간 한국에서의 푸른 꿈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국제학생지원팀은 천안시 천안청년센터 <이음>과 협업하여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지역 중견기업에서 인턴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협업하고 있다. 천안시 관내 기업에서 3개월 근무를 마친 후 정규직 채용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한 천안형 <청년인턴제>는 올 상반기에 10여 명의 청년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천안형 <청년인턴제>는 상명대학교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올해 상반기부터 외국이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인 유학생 천안시 청년인턴제>로 확대되어 처음 시행되었다. <외국인 유학생 천안시 청년인턴제>에 1기로 참여한 상명대학교 한국언어문화전공 19학번 웬티빅뒌은 베트남 유학생은 천안시에서 지원하는 취업역량강화 교육을 이수하고 천안시 성환 소재 ㈜상신종합식품에서 2개월간 인턴십을 수료하였으며, 지금은 <외국인 유학생 천안시 청년인턴제>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문화와 직무에 대해 경험한 인턴십 경력을 바탕으로 한국 내 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는 웬티빅뒌 졸업생에게서 <청년인턴> 참여 경험과 상명대학교에서의 유학생활에 대해 들어보았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한국언어문화전공 19학번 졸업생 웬티빅뒌입니다. 베트남에서 유학왔고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비교적 높은 급여를 받아야 하는데 초봉부터 높은 급여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 후 취업비자를 받을 계획입니다. 2. 한국어 실력이 좋은데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상명대학교 대학생활에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와 입학할 때 한국어 수준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입학할 때는 한국어능력시험 1급 수준이었습니다. 입학 후에 대학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교육을 꾸준히 받으면서 많은 향상이 있었습니다. 또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서 모르는 어휘가 있으면 바로 알아보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한국어를 오래 공부해보니 어휘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3. 청년인턴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회사에서 근무 하거나 취업을 위해 면접을 직접 해본 경험이 없어서 많이 긴장했습니다. 대학의 일자리플러스센터와 천안시의 도움으로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 작성하는 방법과 면접 노하우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4. 상명대학교와 천안시가 함께 진행한 <외국인 유학생 천안시 청년인턴제>에 참여한 기간 중 기억에 가장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세요. 이번에 인턴십을 한 ㈜상신종합식품은 매월 첫날 한 시간 정도 모든 직원들이 모여서 새로운 직원을 소개하고 대표님의 발표도 듣는 시간을 갖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회계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관련 서류를 정리하고 입력하는 일을 도왔는데 가까이서 업무를 알려주신 분이 회사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고 직장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직은 기업을 통해 취업비자를 받아 취업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여서 대학원에서 경영이나 경제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천안시와 연계하여 지역기업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굼합니다.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정식으로 작성해보고 면접도 해볼 수 있었던 것과 직접 한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한국기업의 분위기를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천안시에서 소개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믿고 참여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6.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에서 유학을 준비하는 예비 후배들과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유학생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합니다.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취업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꾸준히 수업을 잘 듣고 한국어 공부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대학에서 유학생들을 위해 준비된 여러 프로그램에 대해 늘 관심 갖고 참여하는 것은 대학 생활을 잘 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기회가 된다면 졸업하기 전에 꼭 액셀을 잘 배워야 합니다. 왜냐면 회사에서는 액셀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7. 올해 8월에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졸업하셨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졸업하고 잠시 베트남에 다녀왔습니다. 기업을 통해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 기준 이상의 급여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초봉으로 높은 급여를 받을 수는 없어서 한국에서 대학원 졸업 후 취업비자를 받아 열심히 취업 준비할 계획입니다. 한국어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상명대 한국언어문화전공을 선택했는데, 인턴십 등을 하면서 경영이나 경제 공부를 더 해서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8. 상명대학교는 웬티빅뒌 학생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상명대학교는 저에게 “집”과 같은 존재입니다. 늘 돌아오는 곳, 머무르고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국제학생지원팀은 유학생들이 대학에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지원해 줍니다. 특히 대학에서 근로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셔서 많은 시간을 캠퍼스에서 보내며 유학생들을 위한 지원에 참여하는 경험과 버디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인 학생들과 교류한 경험을 통해 더욱 상명대학교와 친근해졌습니다. 9. 마지막으로 상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활을 돌이켜보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매 학기마다 지원해주셨던 한국 문화탐방 프로그램과 한국어능력시험 성적에 따라 지원해주신 장학금 때문에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한국어 실력도 더욱 향상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언어문화전공 교수님들과 국제학생지원팀 구성원 분들께서 그 동안 많은 도움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지리학 연구..박수경 교수
스트레스가 과다한 시대... ‘Healing’이라는 단어를 빼고는 사회와 문화적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힐링’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일상 깊이 파고들었다. 힐링은 마음을 위안하며, 치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이 심화하면서 배려와 위로받기 어려워지는 사회 현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사회가 각박해지고 생존 경쟁에 내몰린 이들을 중심으로 공감과 위로, 치유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이 힐링(치유)을 위한 사회, 경제, 문화, 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산업과 학문 연구가 진행 중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지리학 영역에서도 힐링(치유)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건강한 삶에 관해 관심을 두고 치유에 관한 지리학적 접근을 위한 연구를 하는 교수님이 우리 대학에 계시다. 우리 대학 지리학과 동문이기도 한 공간환경학부 박수경 교수님을 만나 대학 시절 이야기와 연구 분야인 건강 지리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공간이 마음을 치료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 건강 지리학은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지만, 캐나다,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연구가 진행되는 분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발히 연구되고 있지는 않지만, 점차 연구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건강 지리학(geography of health)은 21세기에 등장한 의료지리학과 보건지리학과 구분되는 분야로 장소성(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집단적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그 생활의 기반이 되는 장소에 대해 가지는 사회적 의식)이 한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고, 확립하는데 중요해지면서 이 분야에 대한 학문적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교수님은 처음 건강 지리학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고, 의료 서비스 원격 진료 연구를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건강 지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 공부하던 중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왔고, 학업과 일본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이 친구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친구의 어려움과 건강의 문제를 미리 알고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고 계신다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마음의 치유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됐고, 공간이 마음을 치료하는 것에 대해 알고자 했던 것이 건강 지리학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정신건강에 있어 대안적 치유 공간에 관한 연구 교수님께서는 정신건강에 있어 대안적 치유 공간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의의에 대해 알고자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역 커뮤니티에 형성된 치유의 공간에 대한 지리적 고찰’ 연구를 비롯해 △일상적 삶에서의 치유의 공간에 관한 지리적 고찰(심리상담 카페를 중심으로) △치유의 공간에서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인생학교, 길담서원, 아침 편지의 사례를 중심으로) △치유의 공간에서의 일상성 회복에 대한 지리학적 고찰(청소년 미혼모 시설 자오나 학교를 중심으로) △정신건강을 위한 대안적 치유 공간의 지리학적 의의(일본 카와사키의 도라지회를 사례로) △유학생 관점에서 바라본 학교 밖 소속감에 관한 건강 지리학적 연구 등‥ 교수님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겪었던 어떤 슬픔이나 어려움에 대해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이를 어떻게 해소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연구’했고, 연구 대상이 사회적 소수자 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대상이 되다 보니, 대상을 찾고 조사를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연구에서는 연구를 위해 유가족을 찾아가는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였다. 2~3년 쯤 지난 시기였는데, 처음 그들을 찾아갔을 때 반응은 “찾아오지 말라” 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가족들은 기대고 싶고, 상황을 알려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데, 당시 정치인을 비롯한 연구자들도 당시 그들의 어려운 심리와 상황을 이용했고,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더 이상 그들을 찾지 않는 등 이미 많은 상처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연구를 위해 그들을 찾아가는 그것조차도 너무 죄송했고, 연구를 계속해야 할 지를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에는 어디에라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지리학 분야에서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관해 관심이 있었다는 흔적조차도 남지 않을 것 같아 계속해 연구를 진행하셨다고 한다. 또, 일본 카와사키의 고령자 재일한국인 모임인 도라지회를 사례로 연구할 때는 고령자 할머니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래도 불러드리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도 대접하는 등의 노력으로 할머니들과 친분을 쌓고 나서야 연구도 하고, 논문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 미혼모 시설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셨는데, 일반적으로 어려운 환경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시설 내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고 무거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서 놀랐던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사람을 통해 상처받지만, 결국 사람을 통해 회복될 수밖에 없고, 완전히 상처가 회복되지는 않지만, 공동체 속에서 회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라며, 교수님께서는 연구를 통해 ‘치유의 공간 속에서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리학을 눈에 보이는 공간적 의미로 이해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흔히 가진 표면 의식, 내부 의식, 무의식 등이 어떻게 보면 하나로 각각 나누어지는 지리적 단위로 볼 수 있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공간이 진짜 공간일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투영된 어떤 것이냐에 따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바빴던 학생 박 교수님은 우리 대학 지리학과 96학번 졸업생이다. 학생 시절에 관한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바빴던 학생”이었다 라고 설명했다. “제가 공부하던 2000년 전후 시기에는 우리 집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어요. IMF도 있었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도 있었고….” 학생 시절 교수님도 그러한 경제적 영향을 받았고,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도 겪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근근이 학업을 이어갔다고 했다. 석사와 박사과정 중에도 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어려웠으므로 시간을 쪼개가며 아르바이트로 생계와 학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도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대학 시절 ‘쥐의 뼈를 추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상황이 급했던 터라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화학 처리된 쥐에서 뼈를 추려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토를 하는 등 어렵게 겨우 참아내며 일했지만, 나중에는 쥐의 근육과 골격 등의 구조를 이해하면서 일에 속도가 붙었다고 한다. 친구 몇몇이 함께했는데, 나중에는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녀를 막론하고, 쥐 뼈를 추리는 등의 일은 누구나 어렵고 힘들게 느낄 수 있었겠지만, 당시 교수님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학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고마운 기회였다고 이야기했다. 또, 교수가 된 후에는 수업 중 졸린 학생이 있으면 종종 옛날 경험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쥐 뼈를 추리는 아르바이트는 학생들의 잠을 깨우는데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해서 이후에도 좋은 역할을 하는 아르바이트였다고 이야기했다. 힘든 시기를 먼저 경험한 어른으로서... 교수님은 수업 중 본인이 겪었던 어려웠던 경험과 고민에 대해 학생들에게 솔직히 이야기하는 편이다. 어느 날 기말고사 시험지에 어떤 학생이 이런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교수님이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지만, 이렇게 교수가 되어 우리 앞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되었고, 또 위안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일찍부터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치유”라는 화두를 계속해서 탐구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교양 수업에서는 많은 학과의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학 생활이 아닌 집안이 힘들거나, 폭력에 시달리는 등 혼란 속에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교수님도 어린 시절 겪었던 여러 문제와 어려움을 경험했는데, 그럴 때마다 하소연하거나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인지 학생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단계별로 도움을 주거나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교수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높은 산이기보다 나지막한 언덕이 되고 싶다”라고 답했다. 이 말은 일본 유학 시절 힘들 때마다 들었던 종교적 문구인데, 어마어마하고,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를 하는 대단한 학자이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학생들이 교수님을 만나 인사하기를 꺼리지 않는...그냥 선생으로 남고 싶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교수로서 엄청난 사회적 명예와 권력을 갖추고 학생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지만, 학생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커피 한잔을 내밀면서 나도 너처럼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선생으로 남고 싶어요” 인생의 기억 중 가장 행복했던 대학으로 돌아와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들에게는 가까운 선생으로서. 또, 치유의 공간을 중심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슬픔이나 어려움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학자 박수경 교수님의 열정 에너지 총량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연매출 150억의 세트디자인 및 제작자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조선명탐정 시리즈1,2,3>, <늑대소년>, <미쓰 와이프>, <살인자의 기억법>, <극한직업>, 범죄도시<2,3,4>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파친코>, <환혼>, <일타스캔들> 등 유수의 영화와 드라마가 완성된 세트(무대) 제작업체 ㈜아트레이드의 남성주 대표는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무대미술전공 97학번 동문이다. ㈜아트레이드의 남성주 대표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홈쇼핑 업체 디스플레이와 무대디자인을 담당했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세트 제작업체에서 근무하며 현장 경험을 쌓은 후 2007년 아트레이드를 창업하고 2013년 법인사업체인 ㈜아트레이드의 문을 열었다. 남성주 동문은 현재 약 1만5천여평 규모의 연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또 2차 부지인 파주 스튜디오에 약 5천평 규모의 세트장 설립 허가를 받았고, 3차 부지로 연천에 약 5천평 정도의 부지를 확보해 스튜디오의 대규모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남성주 동문에게서 근황과 함께 유일무이의 작품을 위한 도전정신과 경영철학을 들어보았다. 1. ㈜아트레이드를 창업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돈을 벌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창업 했다."는 소박한 대답으로 시작한 남성주 대표는 영화 세트에 참여하기 전에 홈쇼핑 무대디자인을 담당할 때부터 영화 작업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영화 작업을 못하면 시간이 지난 후 후회할 것 같아서 영화 세트 제작 회사에서 실무를 배우고 창업했다고 말했다. 창업한 지 어느새 17년째 접어든 남성주 대표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연출자들과 미술감독들에게서 신뢰받는 세트(무대) 제작업계 대표 주자로 상명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2. 국내 최대 규모 세트 스튜디오로도 유명한 ㈜아트레이드의 남다른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가. ㈜아트레이드를 운영하는 남성주 대표는 세트 디자인과 제작을 메인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트레이드의 가장 큰 특징과 장점은 무대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성주 대표가 주문받은 디자인에 본인의 생각을 담은 피드백까지 더해 새롭고 독보적인 세트(무대)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 업체에서 간과하는 특수한 세트(무대)를 제작해내기 위해 3D 프린터, CNC 조각기 등 첨단장비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또한 현업 미술감독이 남성주 대표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다. 앞서 소개된 유수의 작품들은 대부분 남성주 대표가 직접 제작한 세트(무대)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3. 상명대학교는 1996년에 4년제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무대미술전공을 개설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분야를 전공으로 수학하면서 대학 생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상명대학교 무대미술전공이 개설되고 2년째 되던 해인 1997년에 입학한 남성주 대표는 그 시절에 무대미술 분야는 미개척 분야이지만 영화나 연극에서는 실질적으로 꼭 필요한 분야였기 때문에 대학 내에서는 물론 타 대학 영화과와 연극과에서 세트(무대) 디자인과 제작에 대한 요청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영화, 연극 관련 작품에 대해 학우들과 대화하고 교류할 기회가 많았고 독창적인 세트(무대)를 위해 고민했던 것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든다."고 대학 생활을 추억했다. 4. 대학 생활에서 현재 많은 현업 미술감독이 함께 일하고 싶은 세트 제작자로 성장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 영화나 연극 분야에서 꼭 필요하지만 4년제 대학 중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상명대 무대미술전공은 대학 내 영화전공과 연극전공은 물론 타 대학과 협업할 기회가 많아 자연스럽게 독창적이며 좋은 세트(무대) 제작을 위해 고민할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실무중심의 교육으로 이끌어주신 교수님과 현장 실무을 경험하게 해주신 선배님들의 관심과 지원이 지금의 세트 제작자로 성장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남성주 대표는 전공의 특성상 팀 작업이 많았기 때문인지 무대미술전공은 선·후배 관계가 더욱 돈독하다고 덧붙였다. 5. 상명대학교는 영상문화와 공연예술 등 문화예술산업에서 꼭 필요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한발 앞서 무대미술전공을 개설했고, 현재 많은 졸업생들이 무대미술, 무대조명, 무대의상 등의 현장에서 두각을 보이며 활동하고 있다. 현재 영화와 드라마 세트 제작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업체 대표로써 후배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남성주 대표가 처음 CJ홈쇼핑에서 일할 수 있던 것도 대학 시절 무대 제작에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눈여겨봤던 선배가 이끌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앞길을 이끌어준 선배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상명대 무대미술전공 1학년 후배들 10여 명을 하계와 동계 방학에 세트 제작장에서 현장실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급여를 줄 때는 늘 "다양한 경험을 위해 가능하다면 국내나 해외로 배낭여행 갈 것"을 권했다고 한다. 1학년 때부터 현장실습을 통해 전공 진로를 고민하고 설계한 친구들은 전공에 대한 자세가 더욱 진지해지고 전공 목표를 향한 의지를 대학 초기부터 강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유독 1학년 후배들에게 더 애착이 갔다고 한다. 현장실습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후배들을 지금은 공중파, 종편, 홈쇼핑, 영화 영상제작사 등 많은 현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며 흐뭇해 했다. 특히 ㈜아트레이드는 올해 상명대 무대미술전공에서 주관하는 <2023 예비예술인 현장연계 지원사업> 일환의 문화예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산업체 현장연계 교육시스템 구축에 협력업체로 참여한다. 6. ㈜아트레이드는 연매출 150억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있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무조건 성실하고 열심히 한다."는 생각으로 이윤보다는 주어지는 작품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는 남성주 대표는 <성실>이 가장 큰 성공의 요인이라고 강조하며, "소소하고 작은 일도 성실하게 임하면 신뢰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성주 대표는 창업을 하고 3년은 브랜드를 알리고 인정과 신뢰를 받는 업체가 되기까지 금전적으로도 어렵고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윤이 아닌 작품을 선택한 결과 자연스럽게 업계 점유률이 높아져 지금은 국내 다섯손가락에는 드는 것 같다."는 자부심을 보이기도 했다. "문경에 세운 tvN드라마 <환혼>의 오픈세트장은 문경시에서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만큼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며 "세트 제작의 또 다른 보람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7. 아트레이드(artrade)란 art + trade 의 합성어로 영상, 공연, 기획, 전시의 토탈 디자인을 지향하며 분야 간의 교류와 나눔을 통해 한 곳에 고이지 않고 활동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아트레이드의 대표로서 궁극적인 목표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영상미디어산업의 전문 세트 디자인 및 제작에서 대한민국 최고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보인 남성주 대표는 자신의 기업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본인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가 되기 위해 서로 격려하며 자율경쟁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통해 우리나라 영상미디어산업이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며 동료들과 동반 성장을 위한 남성주 대표의 경영마인드와 작품에 대한 열정이 ㈜아트레이드 성장의 원동력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머릿속에는 있지만 구현되지 못한 서비스를 현실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일상인 시대 우리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이 주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동안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생각했지만,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의 알고리즘부터 제조업, 교육업, 금융업 등 일상에 관련 기술이 다양한 형식과 형태를 통해 접목되어 있다. 이렇게 사회 전반에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사용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이 어떤, 누구에 의해 개발되고 우리가 사용하는지에 깊이 생각해 본 경험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연구하고, 우리 머릿속에 있지만 현실에 구현되지 못한 서비스들을 현실 세계에 내어놓는 역할을 하는 우리 대학 동문이 있다. 인간의 효율적 삶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오늘도 분주한 하루를 보내는 박진성 동문을 만나봤다. 사용자의 편의성 증대를 목표로 박진성 동문이 일하고 있는 ㈜파이브웍스는 AI, 빅데이터, MSP(클라우드) 등을 기반으로 우리 일상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개발하는 전문 기업이다. 처음은 마음이 맞는 우리 대학 동문 5명이 독수리 5형제처럼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기반으로 뭉쳐 시작되었다. 이들은 사용자의 편의성을 증대하기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대학을 대상으로 클라우드 교육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클라우드 엔지니어를 원하는 기업은 많지만, 대학에서는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학생들에게 현업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박진성 동문이 하는 일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용자의 편의성 증대’를 목표로 하는 서비스 개발이다. 대표적으로는 KT AI 통화비서 서비스, 무인 튀김기와 냉장고 등이 있고, 우리 대학의 로보어드바이저와 피어오름 통합 플랫폼도 박진성 동문이 일하는 ㈜파이브웍스에서 개발했다. 욕심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저 재밌고 설레었던…. 박진성 동문은 어린 시절 야구선수라는 진로를 정하고, 중학교까지 준비를 계속했다. 그러나 잦은 부상과 운동선수라는 직업 수명이 비교적 짧다는 점 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고2부터는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야구를 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던 박진성 동문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놀기도 열심히 놀았다. 전교 부학생회장도 하는 등 운동을 하느라 못한 학교생활에도 열심이었다. 늦게 진로를 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만큼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을지 오래 생각했다. 그 당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컴퓨터였고,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학사경고도 받아봤지만, 수석 장학금도 받아봤다. 비교과 활동도 열심히 참여해 비교과 통합 장학금도 받았다. 대학 행정 부서에서도 일했다. 우체국, 정보통신팀, 입학팀 등에서 일하며 간접적이지만, 대학 행정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경험했다. 또, 총학생회 임원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당시 총학생회가 3년 만에 다시 만들어진 총학생회라 의미가 남달랐다. 대학 축제 준비를 하면서,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유명해진 할담비 지병수 할아버지를 축제에 초대해 학생들에게 반응이 꽤 좋았고, 그 일을 계기로 SBS ‘한밤의 TV 연예’ 인터뷰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24살, 창업에 도전하다. 창업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그때, 박진성 동문은 24살이었다. 당시 삼성전자와 농협의 최종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다. 워낙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지내왔던 터라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조건도 좋지만, 창의적인 분위기에서 내가 직접 조직문화 만들며 지내는 것이 능력을 더 잘 발휘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 맞는 몇몇과 함께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도전’이라는 것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려움도 많았다. 창업 초기에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한 달에 4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는데 식비와 커피값을 지출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오죽하면 대형마트에서 20리터 아메리카노를 돈 모아 사서 물을 타 먹기도 했다. 처음 사무실이 아파트 상가 창고였는데 월세가 30만 원 정도였다. 당시 6명이 등을 대고 일할 만큼 좁고 여건이 좋지 않았는데, 작은 온풍기를 사서 돌아가며 썼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템은 항상 누구나 다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적으로도 훌륭해야 하는데 다른 기업처럼 충분한 경험을 갖춘 사수가 지도하는 등의 멘토 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우리는 매번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능력을 갖추어도 대부분 기업에서는 우리의 상품을 사려고 하거나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소규모 신생기업이고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당장 눈에 보이는 타이틀도 중요했기 때문에 좌절한 경험도 많았다고 그는 털어놨다. 창업 이후, 답이라고 생각한 것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됐다. 창업 이후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 사고라는 걸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말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서비스가 공짜로 제공된다면 당신은 그 서비스의 고객이 아닌 상품일 가능성이 있다.” 무료라고 알고 있는 토스나 챗 GPT 서비스는 필요한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며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지만, 이 서비스들은 시간이 흐른 후에 유료로 전환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우리 생활에 침투하며 쌓인 고객의 정보 자체가 상품이 된다는 것을 창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아인슈타인의 말 중에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살아오면서 경험과 지식으로 어느 정도 답을 정하지만, 그 답이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창업 이후 여러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돌아보면 나를 또 다른 답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창업을 고민하는 후배에게 전하는 말 창업을 고민하는 후배가 있다면, 겁먹기보다 도전하라고 그는 말한다.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 너무 많고, 그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그것도 나의 실력이 된다.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도전 의식”이다. 이 세상의 대부분 일은 사람이 하는데 시도하기 전에 겁부터 먹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학교 교육프로그램이나 각종 포럼, 취업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시야를 넓히라고 조언했다. “선배의 도움이 필요한 후배는 얼마든 시간을 내어 커피챗을 하며 이야기를 나눠봐도 좋으니 편하게 연락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상명인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청사진 품다. 이제 창업 이후 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창업 초기와 비교해 직원도 늘고, 업무 범위도 상당히 늘었다. 현재 40여 명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그 중 상명대를 졸업하고 합류한 인원도 상당히 많다. ㈜파이브웍스는 설립 당시 5가지 이념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Efficient Life △Artificial Intelligence △Big Data △System Integration △Support People이 그것인데 AI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이 효율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하고 지원하겠다는 의미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개발하고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교육사업과 관련해 더 많은 대학을 대상으로 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우리 상명대에 더 많은 현업 관련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다. 또, 후배들과의 직접적 소통을 통해 능력 있는 후배들은 많은 기업과 연계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박진성 동문은 인터뷰 마지막 학교에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생으로서 많은 선배, 후배와 교류하고 싶다고 했다. 사회로 먼저 나선 선배가 아직 재학생인 후배들과 교류하며, 더 많은 정보를 주고, 이를 기반으로 후배들이 성장하기를 바랬다. '상명'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공부한 동문으로 끈끈함을 드러낼 기회와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문으로서 졸업한 대학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애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대학도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라는 말도 함께 전했다. “상명대를 사랑하는 동문 중 한 명으로서, 졸업 후에도 학교를 위해 노력하고 후배를 사랑하는 한 명의 졸업생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효율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아직 현실에 없는 서비스를 현실에 내어 놓고, 또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학교를 사랑하는 박진성 동문과 ㈜파이브웍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남과 북의 의례음식 문화요리 경연대회 대상 수상
대학원 외식영양학과 석박사 과정 최은영 학생이 지난 4월 29일 「제14회 전통음식과 전통주의 만남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남과 북의 의례 음식 문화 요리경연대회」에서 '화혼'이라는 팀으로 출전하 대상을 받았다. 이번 경연대회는 선조의 삶과 지혜가 담긴 한민족의 전통음식 문화의 뿌리를 이어가고 계승 발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향후 남북협력사업 추진과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전통음식과 전통주 분야 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문화예술인의 꿈을 응원하는 21대 국회의원
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영화영상전공 동문인 유정주 의원은 애니메이션을 문화예술에 포함하는 법안 발의로 애니매이션산업 종사자들의 예술활동에 대한 법적 지위를 확보하게 했으며, 감독·작가 등 영상물 저작자가 방송사·극장·OTT 등 영상물을 최종적으로 제공하는 자(영상저작물최종제공자)에게 수익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영상제작사에 비해 협상력이나 정보가 부족한 저작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앞장서왔다. 또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문화예술용역 제공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보호관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등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권리보호를 위한 규정하도록 하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과 코로나19의 확산 및 방역대책의 실시로 인하여 예술인등이 입은 경제적 손실을 보전하고 이들을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코로나19 종식 이후 문화예술 관련 산업의 재기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 등에 따른 예술인 등의 손실보상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유정주 동문은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법안 발의와 함께 의정활동을 해온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아 2022년 10월에는 「제15회 대한민국 자치대상」 특별부문 문화대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상명대학교 영화영상전공 95학번이며 2020년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으로 21대 국회에 등원하며 정치에 입문한 유정주 의원에게 그의 근황과 정치에 대한 철학을 들어보고자 한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 비례대표 국회의원 유정주입니다. 문화예술에 대표성을 갖고 정치인이 되어 문화예술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청년을 다 모아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청년다방’이라는 국회 연구단체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을’을지키는 모임>의 을지로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외 정치권이 사법 농단이나 가짜 정치 뉴스에 이용되면 토론하고 반박하는 정치탄압 TF 등 여러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인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K-문화가 세계적 콘텐츠로 발돋음하고, 그 위상을 지킬 수 있도록 더욱 더 의정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2. 국회 연구단체인 <청년다방>은 명칭부터 참신합니다. <청년다방> 공동대표로 활동하시면서 느끼신 점 등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청년다방>을 통해 처음에는 코로나 팬더믹으로 오랜 시간 비대면으로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처음 모임을 만들 때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 가진 중압감 내지는 갈등의 골은 무엇일까? 에 초점을 두었다면 날이 갈수록 “우리의 청년들은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민이 있으면 방법을 스스로 모색하며 미래의 먹거리, 산업에도 과감하게 도전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청년들을 만나면서 배우게 된 것이 많았습니다. 저는 10대, 20대에 꿈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 있고 실현하기 위한 계획이 부족했고 도전하기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구나 같은 속도로 꿈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꿈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 방법을 일단 시작하는 것입니다. 간혹 청년들을 서로 반목하는 사람들, 사회적 문제의 한 고리로만 바라보는 시선도 있습니다만 <청년다방>을 통해 우리 청년들은 대부분 꿈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해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3. 예술인의 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셨던 상명대학교에서의 대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바랍니다. 영화를 만드는 데 진심이었던 기억이 많습니다. 친구들끼리 팀을 짜고 역할을 나누어 단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필수과목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했으나 숙제하듯이 했다기 보다는 영화에 진심이었단 생각입니다. 제가 <소녀의 방>이라는 단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든 기억이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10대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그 역할을 할 사람을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톤도 굉장히 어두웠고 쉬운 캐릭터가 아닌데다가 겨울에 촬영하면서 여름옷을 입고 연기해야 했습니다. 결국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그 소녀 역할을 했습니다. 대학 어디에도 필름이 남아 있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영화작업 중에 중간 몇 프레임의 필름을 분실한 것입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 때 만 해도 필름을 사용하는 때였기 때문에 모자, 마스크, 비닐 옷, 장갑을 끼고 편집실에 들어가서 필름이 손상되지 않도록 초집중해서 작업을 해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작업 중에 중간 몇 프레임의 필름이 분실된 것입니다. 작업실 안에는 영화에 필요 없는 장면들이 담긴 버려진 필름이 방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 잃어버린 몇 조각의 필름을 찾아내기 위해 밤을 새웠었습니다. 결국 필요한 필름을 찾아냈고 다행하게도 많이 구겨지진 않은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지만 그때는 울면서 찾았습니다. 정말 세상 무너지는 심경이었으니까요. 창의적인 작업에 함께 몰두한 소중한 기억입니다. 4. 상명대학교 예술대학 영화영상전공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다닐 때는 남녀공학이 아닌 여자 대학교였습니다. 우리끼리 무거운 조명, 촬영 카메라를 끌고 다녔습니다. 그때는 자가용도 흔하지 않아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 대학이든 아니든 영화 작업을 하면서 작업하는 팀원끼리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됩니다. 영화 작업이 공동 작업이다 보니 본인의 아이디어를 피력하고 설득해야 하고 또 그 반대로 본인의 아이디어를 10명 중 8명이 재미없다고 하면 고집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도 배우게 됩니다. 저는 상명대학교에서 얻은 많은 것 중에서 자라 온 환경이 다른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우물 안을 탈출하는 것 같은 기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상명대학교에서 만나 친구들은 대부분 획일화된 생각과 교육에 강박보다는 개성이 뚜렷한 친구들이었습니다. 또 자유로운 대학의 분위기와 함께 “무엇이든 만들어도 좋아!”라는 열린 창작의 기회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화예술 그리고 콘텐츠는 결국 과감한 도전으로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감각을 일깨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많은 영화, 예술 작품, 책, 영상을 보고, 느끼고, 표현해 본 수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는 예술인들에게 큰 자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5. 상명대학교 영화 영상전공은 많은 예술인이 배출되어 문화예술산업 현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술인이 아닌 정치인으로 입문하시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오랜 기간 운영했습니다. 직접 운영해보니 다양한 소재의 창작 작품을 만들면서 독점과 불공정 피해가 생기지 않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투자, 배급, 제작과 관련해서 창작자, 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 또한 심각한 현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야를 넓혀 보니 문화예술계 각 분야도 개선이 필요한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된 후 (사)애니메이션산업협회 회장을 맡아 문화예술 콘텐츠 계의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국회와 청와대 등을 찾아가서 현장의 제도와 정책이 진일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권 입문을 제안받았습니다. 문화강국 대한민국답게 문화예술인이 제대로 존중받으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과 법안의 지속적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정치활동에 참여하길 바랍니다. 6. 의정활동을 통해 주력했던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2년 반 전에 발의한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안‘ 제정법이 문화체육관광위를 통과했습니다. 플랫폼사 혹은 예산과 투자를 쥐고 있는 곳에서 제작자들이 프리랜서들에게 빈번하게 요구하는 불공정한 행위에 대한 규제를 담은 법안입니다. 타 부처와 플랫폼사 등으로부터 반대가 극심했던 법안입니다. 반대자들과 2년 동안 소통하면서 고리를 풀기는 했지만, 여전히 본 법안을 반기지는 않고 있습니다. 부디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에서 통과되어 현장의 문화예술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법 하나로 해소될 수는 없지만, 관행적이었던 불공정한 거래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창작자가 자신의 몫을 정당하게 분배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법’ 개정안을 현재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반대가 극심하지만 이 제도는 이미 유럽과 아프리카에도 있는 법안입니다. 창작자들이 거대 자본주의 안에서 그저 몇 번 활용되는 일회용처럼 대우받는 일이 없어지고 진정한 문화예술 강국답게 창작활동이 존중 되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영화감독들과 시나리오 작가의 연평균 급여가 1,000만 원 선에 머물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대우는 개선되어야 하며 한 곳으로만 보상이 모이는 독식체제는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7.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이며 힘든 의정활동 속에서 힘과 용기를 주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역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만화의 도시인 ‘부천’입니다. 부천은 평소 제가 많은 신세를 진 곳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제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해 주신 곳이기도 하고 국회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사업을 한 곳입니다.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기반에 문화와 예술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천에는 이미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오랜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온 도시입니다. 그 기반에서 진일보하여 부천의 확실한 독자성으로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싶습니다. 부천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생활 밀착형 문화와 만화의 도시 부천으로 거듭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에서 주목받은 도시들은 대부분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교통, 인프라, 원도 시가 갖고 있던 숨은 매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천에 대해 도시공학적으로 폭넓은 구상을 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부천의 발전을 위해 실천해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약자로 만드는 잘못된 제도와 인식이 변화되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 저의 좌우명을 귀엽게 표현하면 “고백할게. 기다려.”입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계속 걷다 보면 인생이 고백하는 순간이 반드시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잘하고 있어. 계속할 수 있게 도와줄게. 힘내!”라고 화답하는 날까지 열심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계획입니다. 8. 마지막으로 꿈을 위해 노력하는 상명대학교 후배들에게 대학 생활에 대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믿고 도전하세요. 지나고 보니 겁이 나서 도망쳤던 것들에 대한 미련이 남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큰 실패도 겪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덜 성숙했을 건 같고 정치인이 될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힘든 것이 나중에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지금 잘되어서 기고만장했던 일이 훗날 자신의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신 남과 비교하며 조급해 하지는 마시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도전하된 자신의 속도를 지키며 조급해 하시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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